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즈텍 제국 (문단 편집) == 평가 == 20세기까지는 서양 열강 세력에게 짓밟힌 비운의 토착 민족들이라는 동정적인 여론이 많았고, 당시 코르테스가 아즈텍의 인신공양을 과장해 악마화했다는 주장이 정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르테스의 증언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없어 '''코르테스 생전에도 그의 말을 허풍이라 비웃는''' 여론이 많았으며 또 아메리카 일대가 [[콩키스타도르]] 같은 침략자들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곳이 많았기 때문에 서양 열강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는 반응이 많았었다. 멕시코 민족주의자들도 이런 주장을 내세워 자신들이 아즈텍의 후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대규모 인신공양과 식인의 증거들이 대규모로 발굴된 이후,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코르테스의 과장으로 치부하기에는 아즈텍의 인신공양의 흔적은 다른 중남미의 마야, 잉카 문명과 비교해도 규모나 잔혹성이 강하다는 것이 정설이긴 했다. 그러다가 2015년에 130,000명의 머리를 전시했다고 기록한 우에이 촘판틀리 유적이 실제로 발견되면서, 코르테스의 기록이 정말로 상당히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아즈텍의 학살 규모는 이미 코르테스 생전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논란이었고, 코르테스가 촘판틀리 같은 인신공양의 기념물들을 파괴하려고 노력했기에[* 기독교적 이념에도 맞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도 주변 원주민 세력의 지지를 위해서 원주민 피해자들로 만든 인신공양 기념물을 파괴할 필요가 있었다] 남은 증거도 부족해 수백 년간 과장된 기록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안드레스 데 타피아(Andrés de Tapia)가 기록했던 우에이 촘판틀리(Huey Tzompantli)가 2015년에 실제로 발견되고, 안드레스의 기록과 그 규모가 매우 흡사하면서 코르테스 원정대의 기록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기록임이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발견된 유골들이 야외에서 부식되어서 주기적으로 교체된 사실도 확인되었고, 우에이 촘판틀리에 버금가는 촘판틀리가 코르테스 쪽 기록에 의하면 5개는 더 있었다. 거기에 촘판틀리에 없는 다른 희생자들의 수까지 감안해 보면, 아즈텍이 1년에 최소 수천 명씩은 학살해 인신공양으로 바쳤고, 심할 때는 몇만 명씩 학살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유물로 확인되었다. 동 시기 아메리카 대륙은 물론, 이토록 방대한 인신공양 및 식인을 자행했던 문명은 [[상나라]], [[페니키아]] 정도로 극히 드물었다. 사실 인신공양 문화 자체는 인류 역사적으로 꾸준히 실행되어 오긴 했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문명에서 행해지는 종교 의식은 크게 인신공양에서 동물공양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기도 및 제사로 변화했다. 그런데 인신공양이 다른 단계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대형 초식 동물 [[가축]], 즉 [[소]], [[돼지]] 같은 생물들이 필요했고, 그런 환경 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인구 등의 다른 조건 또한 같이 갖춰져야 했기 때문에 인신공양이 완전히 퇴화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사례가 아즈텍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로쿼이]], 잉카, 마야, [[타라스칸]]을 포함한 대부분의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들이 상당한 인신공양과 식인(잉카 제외)를 자행했다. 한국 역시 2010년대까지는 [[식민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아즈텍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반응이 많았다. 예를 들어 2006년에 개봉한 <[[아포칼립토]]>를 평가하면서[* <[[아포칼립토]]>에 나오는 문명이 [[마야 문명]]이긴 하나, 작중의 인신공양이나 규모는 누가 봐도 아즈텍이다. 대놓고 아즈텍이라고 하자니, 히스패닉 및 멕시코계 인구가 결코 적지 않은 미국 사회상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로 마야로 바꿨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백인우월주의적 왜곡이라며 비판하는 칼럼이 많이 나오기도 했었다. (<아포칼립토>의 관점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상술한 촘판틀리 유적 발견 이후로는 인식이 극변하여, 2020년대 초에 와서는 '판타지 소설 뺨치는 악의 제국', '멸망당할 만했던 국가' 등으로 조롱당하고 있다. 그나마 [[트위터/한국|한국 트위터]] 내의 아즈텍 [[역덕후]]들이 '아즈텍의 식인 문화가 [[인터넷 밈]]이 되면서 과장되고 있다'라는 우호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영향력은 작다. 아즈텍을 옹호하는 일각에서는 이러한 태도 급변화는 어디까지나 대중이나 역덕후, 인터넷 밈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각종 역사에 대한 밈이 다 그렇듯, 인터넷의 여론은 흥미 본위로 과장되거나 편향된 점이 많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식인을 한 것은 [[마오리족]]도 똑같지만 마오리족은 [[전투민족]]이라면서 찬양을 하는 것처럼, 여론이 일관된 논리를 갖췄다기보다는 유행에 따라 간다는 주장이다. 다만 마오리족의 식인과 아즈텍의 식인은 좀 다르다는 점에서 곧바로 반박 가능하다. 일단 마오리족은 적어도 전투에서 패배한 자들 위주로 잡아먹었고 이마저도 나중에는 서로 싸우고 잡아먹기만 하다간 공멸할 것이라고 여겼는지 하카라는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내 희생자를 줄였다. 반면 아즈텍은 여러 도시와 부족들을 지배하에 두면서 지배하에 있어 '''저항도 못하는''' 이들을 상대로 식인을 단순한 종교적 시스템으로서가 아니라 '''통치수단'''으로 했기에 더 비판받는다. 나름대로 자성의 노력을 했던 마오리족과 달리 아즈텍은 오히려 스페인의 침공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갈수록 더더욱 잔혹해져갔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아즈텍의 이미지가 악화된건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 명백한 실존 유물이 발견된 것이 크고 그간 아즈텍에 대한 동정여론도 기록상으로만 존재하던 인신공양의 규모나 잔혹도가 인간 상식선을 벗어나서 사람들이 과장이 심하게 들어간 허구라고 믿었던 이유가 강했기 때문이고 오히려 이런 인간상식 밖에 인신공양이 드러나서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좀 더 아즈텍에 대한 비판이 강해진 측면도 없지 않다. 피지배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잔혹한 지배자가 덜 잔혹한 다른 지배자로 교체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아즈텍의 압박을 받던 [[틀락스칼텍]] 같은 상당수 도시국가들의 입장에서 코르테스가 구원자로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침략의 선봉대를 지휘했고, 이로 인해 멕시코 지방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미국-스페인 전쟁]] 이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시선에 따라 갈리기는 하나 그러한 상황에서 현대의 구 스페인 식민 국가들도 사실상 스페인이 지배하는 지역이라 보는 이들도 있고, 실제로도 예나 지금이나 구 에스파냐, 포르투갈 식민지 국가들의 사회 계층들은 스페인계 백인 상류층과 원주민, 혹은 흑인 하류층같은 형태로 분열되어 있다.] 사실상 스페인의 통치를 받는 지역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스페인의 통치 역시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준으로 가혹했다. 더군다나 스페인은 테노치티틀란을 무너트린 후, 그 지역을 [[멕시코시티]]란 이름으로 바꿔서 메소아메리카 지방의 통치 중심으로 사용했으며 테노치티틀란의 권위는 아즈텍 성립 이래부터 현재까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야돌리드 논쟁]]에서도 보듯 그들 역시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원주민 부족들에게 잔혹한 통치를 수행했다. 메소아메리카라는 장소는 오랫동안 고립된 채 15세기까지도 원시적인 사회의 모습을 유지했다. 즉, 그들이 갖고 있었던 종교 세계에서 포로들은 제물로 바칠 옥수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도덕적으로 전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멸망되지 않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포로들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본격적인 인신공양 이외에도, 일정 나이 이상의 남성들은 전투에서 적을 죽이고 그 피를 바르는 것으로 [[성인식]]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해당 남성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자를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참고로 이런 성인식은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의 최대 피해자였던 [[틀락스칼텍]]조차도 동맹국 군대인 [[스페인군]]이 보는 앞에서 [[내로남불|대놓고 치렀다]]. 물론 적의 피로 피칠갑 하는 것과 수만명씩 제단에서 죽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메소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인신공양과 식인은 관습에 따른 의식이었으며, 규모 면에서 인근 메소아메리카 문명, 그리고 '''유라시아 전체'''의 과거와 비교해서도 대규모에 속했다. 유라시아에선 관습에 따른 인신공양과 식인이 일찍이 쇠퇴했고, 기독교와 이슬람을 비롯한 새로운 종교에 의해 완전히 금지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아즈텍은 아메리카 지방 특유의 환경과 늦은 발전, 그리고 인신공양을 대체할 새로운 관습의 부재로 인해 자발적으로 인신공양 제사를 사라지게 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원시 사회라도 대체로는 비윤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을 터부시하고, 보편적인 윤리와 효율성에 맞는 방식을 찾기 마련이다. 아즈텍 내에서 인신공양이 쇠퇴하지 못한 것은, 아즈텍 문명이 구습에 대해 자성하지 못한 부분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주변 국가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원망을 샀다. 스페인인들이 아즈텍 제국에 당도하자 수많은 부족들이 스페인 측에 가담할 정도로 끔찍한 통치를 저질렀던 것은 분명한 외교적 실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